티눈 2,575번이 닫아버린 문

핵심 요약

  • 질병수술비 특약 가입자가 티눈 냉동응고술을 6년 반 동안 2,575번 받았다. 납입 보험료 513만 원, 청구 보험금은 합산 20억 원대
  • 대법원은 기판력을 들어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한 번 확정된 판결은 증거가 늘어도 못 뒤집는다
  • 진짜 반전은 별건 판결에 있다. "티눈·굳은살은 면책 피부질환" — 같은 청구의 문이 영구히 닫혔다
  • 측정값이 목표가 되는 순간 측정값은 망가진다. 치료 횟수가 돈이 되자 치료가 사라졌다

이틀에 한 번꼴로 티눈을 떼러 병원에 간 사람이 있습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쉬었다니, 나름의 워라밸도 챙긴 셈이죠.

6년 반 동안 받은 냉동응고술이 2,575번. 납입한 보험료는 513만 원인데, 여러 보험사에 청구한 보험금은 20억 원대였습니다(보험저널, 「500만원 내고 20억 타낸 '2500번의 티눈 시술'… 대법원 판결의 기막힌 반전」, 2026.6.4). 수익률로 치면 펀드매니저들이 사표를 쓸 숫자입니다.

이 티눈 실손보험 사건이 지난주 보험저널 기획 기사로 정리되면서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대법원까지 세 번을 오간 끝에, 표면적으로는 가입자의 승리로 끝났거든요.

댓글창의 정서는 "결국 잘 챙기는 사람이 임자"라는 한 줄로 모였습니다. 그런데 업계 안에서 이 판결을 읽는 표정은 전혀 다릅니다. 이긴 사람은 한 명인데, 닫힌 문은 모두의 것이거든요.

걸음 수가 목표가 되는 순간 — 굿하트의 법칙

얼마 전 지인 집에서 묘한 기계를 봤습니다. 좌우로 쉬지 않고 흔들리는 작은 거치대인데, 거기에 핸드폰이 매달려 있더군요.

걸음 수 적립 앱 때문이랍니다. 주인은 소파에 누워 있는데 핸드폰만 하루 만 보를 걷고 있었습니다.

걸음 수는 원래 건강의 지표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포인트가 붙는 순간, 일부에게는 걷기가 아니라 숫자가 목표가 됩니다. 숫자는 완벽한데 건강은 어디에도 없죠.

보험의 '치료 횟수'도 같은 운명을 겪었습니다. 원래는 환자의 상태와 회복 경과를 보여주는 숫자인데, 질병수술비 특약으로 1회당 30만 원이 연동되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진료가 곧 매출이 됩니다. 같은 발에 2,575번의 시술이 쌓일 때쯤이면, '치료'는 의료의 단어가 아니라 청구서의 단어입니다.

영국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가 1975년에 이 현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뒀습니다. 이른바 굿하트의 법칙 (Goodhart's Law)이죠.

측정값이 목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측정값이 아니다.

물론 반복 청구가 전부 검은 속내는 아닙니다. 의사의 권유와 환자의 작은 불편이 겹쳐 만들어지는 회색지대 가 분명히 있고, 그 회색은 시스템이 감당할 농도까지만 회색입니다. 2,575번은 회색이 아니라 그냥 검정이죠.

세 번의 재판 — 수술이냐 아니냐, 그리고 기판력

사건의 뼈대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2016년 가입 직후부터 시술이 시작됐고, 보험사는 "냉동응고술은 약관상 수술이 아니다"라며 계약 무효 소송을 냈습니다. 2021년 대법원은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죠. 냉동응고술도 약관상 수술에 해당하고, 가입 당시 부정 취득 목적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승소 이후 시술은 오히려 가속이 붙었습니다. 보험사가 "판결 확정 뒤에만 2,100여 회를 더 받았다"며 2차 소송을 냈고, 하급심은 이번엔 보험사 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걸 다시 뒤집습니다.

근거는 기판력. 한 번 확정된 판결은, 나중에 증거가 아무리 쌓여도 같은 쟁점으로 다시 재판할 수 없다는 민사재판의 대원칙입니다(보험저널, 「"티눈 치료만 2500번, 7억 수령"… 대법원, 확정판결 뒤집으려는 보험사에 제동」, 2026.3.25). 계약이 유효한지는 2016년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판단이 끝났고, 그 뒤 시술 횟수가 폭증한 건 '새로운 사유'가 아니라 '새로운 증거'일 뿐이라는 거죠.

여기까지만 읽으면 제도가 진 것처럼 보입니다. 상식이 법리에 막힌 그림이니까요.

같은 날의 별건 판결 — 진짜 반전이 적힌 곳

그런데 이 사건의 진짜 결말은 본안이 아니라 별건에 적혀 있습니다.

대법원은 함께 선고한 별건 약관 소송에서 한 줄을 명확히 했습니다. 티눈과 굳은살은 약관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면책 피부질환 에 해당한다는 선언입니다. 과거에 확정된 판결은 건드리지 않되, 같은 약관으로 들어오는 미래의 청구는 합법적으로 거절할 길을 열어준 거죠.

정리하면 대법원은 두 손을 따로 썼습니다. 한 손으로는 기판력이라는 원칙을 지켜 과거를 봉인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약관 해석을 확정해 미래를 봉쇄했습니다. 판결을 뒤집지 않으면서 문을 닫는 법, 이게 이 사건의 행간입니다.

그러니 "대법원이 가입자 손을 들어줬으니 나도 되겠네"라는 독해는 정확히 거꾸로입니다. 그 가입자가 통과한 문은, 그가 통과하는 순간 닫혔습니다. 그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통행자입니다.

보험사를 이겼다는 착각 — 그 돈은 누구의 주머니였나

한 가지 더 들여다볼 게 있습니다. 그가 이긴 상대는 정말 보험사였을까요.

보험은 구조적으로 거대한 곗돈입니다. 수많은 가입자가 매달 보험료를 붓고, 아픈 사람이 생기면 그 공동 기금에서 꺼내 쓰는 약속이죠. 보험사는 그 기금의 금고지기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20억 원의 출처도 자명합니다. 보험사의 금고가 아니라, 같은 풀에 돈을 부어온 다른 가입자들의 주머니입니다. 기금이 새는 만큼 손해율이 오르고, 손해율은 이듬해 갱신 보험료라는 청구서로 모두에게 돌아오죠.

마을 공동 우물에서 한 사람이 물을 퍼다 팔면, 이듬해 우물에는 자물쇠가 걸리고 물값은 오른다.

"보험사를 이겼다"는 문장이 통쾌하게 읽히는 이유는, 상대가 거대한 회사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실제 상대는 같은 줄에 서 있던 익명의 가입자들이었다는 것 — 이게 이 사건의 두 번째 행간입니다.

20억의 행간 — 한 사람의 폭주가 남긴 것

이 사건의 표면에는 "약관만 잘 파면 큰돈이 된다"는 환상이 떠 있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정반대 장면이 흐르죠. 한 사람의 거대한 일탈이 대법원의 약관 해석 확정이라는 가장 단단한 형태의 방어층 을 만들어낸 겁니다.

업계 안에서 보면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자동차보험의 '나이롱 환자' 논란이 입원 일당 보장 구조를 바꿨고, 도수치료 과잉 청구가 쌓이며 4세대 실손의 자기부담률이 올라갔습니다. 극단 사례가 클수록, 그걸 흡수한 시스템의 면역도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그 면역은 일탈자만 겨누지 않습니다. 같은 부위 반복 청구에 대한 심사의 눈금은 모두에게 한 칸씩 촘촘해지죠. 다음에 내 청구서가 예전보다 꼼꼼히 읽히는 기분이 든다면, 그 이유 하나쯤은 이제 알고 있는 셈입니다.

어딘가의 발 하나가, 우리 모두의 약관 한 줄을 바꿔놓았다는 것.